브랜드 스토리

Gottlieb Daimler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다."

고틀립 다임러는 1834년 3월 17이리 독일 쇠른도르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총포공으로 권총 제작 수련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 일을 하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와 1857년부터 1859년까지 2년간 슈투트가르트의 폴리텍 스쿨(독일의 응용과학대학)에 다녔습니다.

이후 프랑스와영국에서 다양한 기술 경험을 쌓고, 1862년부터 독일 가이슬링겐에서 제도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이어 1863년 말, 다임러는 로이틀링겐에 위치한 기계 제작소의 기술 감독으로 일하게 되면서, 1865년 바로 그곳에서 빌헬름 마이바흐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1872년, 고틀립 다임러는 가스 엔진 제작회사인 도이츠 가스 자동차 제작회사(Deutz Gasmotorenfabrik)에 입사해 기술 이사에 오르게 되면서, 오토(Otto)가 개발한 4행정(2-stroke)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합니다.

1884년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일하면서 그는 오늘날 "괘종시계(Grandfather Clock)"로 알려진 내연 엔진을 개발합니다. 이 내연 엔진은 작고, 무게 또한 가벼워 자동차에 탑재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시운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은 다임러ㅡㄴ 다시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1890년 11월 28일, 다임러는 막스 두텐호퍼 그리고 자신의 사업 파트너였던 빌헬름 로렌즈와 함께 DMG(Daimler-Motoren-Gesellschaft)를 설립합니다. 두텐호퍼는 고정형 엔진을 제작하기 원했던 반면, 다임러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하기 원하면서 둘의 의견 차이는 점점 좁힐 수 없게 됩니다. 그러던 중 1891년 빌헬름 마이바흐가 불합리한 계약조건을 이유로 DMG를 그만 둔 이후, 다임러는 대안을 생각해냅니다. 즉, 마이바흐와 함께 비밀리에 계속 엔진을 제작하고, 특허는 다임러의 이름으로 출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한편, 두텐호퍼, 로렌조 두 사람과의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결국 다임러는 주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후 회사의 재정 악화는 기술 개발 부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DMG는 1895년 마이바흐에게 다시 회사로 복귀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마이바흐는 다임러와 함께가 아니라면 자신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며 복귀 제안을 거절하고 결국, DMG는 계속되는 사업 악활르 해결하기 위해 다임러와 마이바흐 모두를 회사에 복귀시킵니다.

이후 마이바흐가 제작한 피닉스 엔진 덕분에 다임러 엔진은 해외에서도 큰 호평을 얻게 되면서, 영국 기업가들은 35만 마르크에 사용권을 사겠다고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다임러와 마이바흐 두 사람의 DMG 복귀는 회사에 생각 이상의 상승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임러는 1900년 3월 6일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돼, DMG의 눈부신 성장을 오래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